[특별기고] 김상홍 명예교수의 인생론(1) '팔여(八餘)와 팔부족(八不足)'

김상홍 | 기사입력 2020/12/21 [17:16]

[특별기고] 김상홍 명예교수의 인생론(1) '팔여(八餘)와 팔부족(八不足)'

김상홍 | 입력 : 2020/12/21 [17:16]

<김상홍 명예교수(전 단국대 부총장)의 인생론을 7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 박사는 한학자로서 다산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그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다산을 이 시대에서 가장 이상적인 공직자의 모델로 제시하면서 그의 청령 사상을 오랫동안 강의해오고 있다. 지금도 김 명예교수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다산의 청렴상을 가르치고 있다. 지도자를 포함하여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 부재가 심각한 현실에서 새로운 교훈을 주고자 본지에 다산의 사상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기로 하신 김 박시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편집자>

 

 

팔여(八餘)와 팔부족(八不足)

 

끝없는 탐욕은 오욕과 자멸을 자초한다. 욕망의 열차는 멈추는 일이 없다. 욕망의 열차는 달리다 탈선을 하고 전복을 해야만 비로소 멈춘다.

 

우리 선조들은 욕망을 극기(克己)하고 현실에서 만족을 찾았다. 조선 중종 시절 김정국(金正國, 1485~1541)1519(중종 14) 기묘사화 때 34세였다. 남곤(南袞)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들이 일으킨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사류들이 죽어나갔다.

 

▲ 사재 김정국(사진_아시아앤)     ©편집인

 

공직자로서 욕망을 억제하고 자족과 청빈한 삶을 산 김정국

 

김정국은 임금의 비서인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고향인 고양군 망동리에 돌아가 정자를 짓고 스스로 호를 팔여거사(八餘居士)라 했다. 학문을 연구하며 저술과 후진교육에 전력하였고 많은 선비들이 문하에 모여들었다.

 

그의 사재집(思齋集) 3팔여거사자서(八餘居士自序)가 있다. 이를 보면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인 팔여(八餘)”를 호로 삼은 사유가 나온다. 어느 손님이 팔여(八餘)를 호로 삼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먹고도 남아 있고(芋羹麥飯飽有餘),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蒲團煖堗臥有餘), 떵에서 솟아오른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涌地淸泉飮有餘),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滿架書卷看有餘),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春花秋月賞有餘),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禽語松聲聽有餘),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고(雪梅霜菊嗅有餘),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팔여이다(取此七餘樂有餘也)

 

팔여에는 벼슬에 물러난 선비의 청빈한 삶이 오롯이 나타나 있다. 마지막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이다라고 하여 하나를 추가한 멋스러움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이 말을 들은 손님은 한참 동안 깊이 생각하다가 세상에는 이와 반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서(客却坐, 深思良久, 復進而言曰 世有反是者.), 여덟 가지가 부족한 팔부족(八不足)을 말했다.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玉食珍羞飽不足), 화려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朱欄錦屛臥不足),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流霞淸醑飮不足),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丹靑畫圖看不足),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解語妖花賞不足), 좋은 음악을 듣고도 부족하고(鳳笙龍管聽不足),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고(水沈鷄舌嗅不足),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부족함을 근심하는 것(有七不足憂不足)

 

이는 호화롭게 살면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결핍증 환자의 삶이다. 가난한 백성들은 이 중에서 하나만을 가져도 행복해 한다. 그런데 온갖 호사를 누리고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김정국의 손님뿐이겠는가? 선비 김정국은 팔여를 즐겼고, 온갖 풍요와 즐거움을 누리고서도 욕망과 탐욕을 멈추지 않은 속물들은 팔부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팔여팔부족은 주인과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욕망과 탐욕을 멈추지 않는 세태를 풍자했다. 이 글에서 손님은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가공의 인물이다. 마치 초나라 애국시인 굴원이 어부사에서 자신과 가공의 어부를 등장시켜 대화를 통해 우국충정을 형상화환 것과 같다.

 

▲ 사재집(사진_우리문화신문)     ©편집인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해

 

김정국은 1537년에 복직되고 다음해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수십 조항에 달하는 백성을 편하게 하는 정책을 건의하여 국정에 반영하게 했다. 후에 병조참의 공조참의를 역임하고,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1540년 병으로 관직을 사퇴했다가 뒤에 예조 병조 형조의 참판을 지냈다.

 

옛 선비들은 출처진퇴(出處進退)가 분명했고 멋이 있었다. 김정국은 벼슬을 마치고 낙향할 때 행장(行裝)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신 한 컬레, 잠을 청할 때 필요한 베개 하나, 바람들일 창구멍 하나, 볕을 쬘 툇마루 한쪽, 차를 다릴 화로 하나, 늙은 몸 의지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였다. 검소한 행장이다.

 

그의 저서로는 사재집을 비롯하여,성리대전절요·역대수수승통지도·촌가구급방·기묘당적·사재척언·경민편(警民篇)등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애서 옛날의 현명한 수령은 관청을 여관으로 여겨 마치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정리해두고 그 행장을 꾸려두어, 항상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가 훌쩍 떠나갈 듯이 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일찍이 마음에 머무른 적이 없다.”고 했다.

 

다산은 취임시나 이임(離任)할 때의 재산이 같으면 훌륭한 목민관이라고 했다. 벼슬을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도포자락을 훠이훠이 날리며 빈손으로 가야 한다.

 

팔여를 즐긴 사람과 팔부족의 늪에 빠진 속물과는 천양의 차이가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더 누리려고 쪽수로 밀어 붙이는 것은 스스로 묘혈을 파는 행위이다. 만족을 모르고 독식(獨食)하고 폭주하다 망한 자들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정국처럼 팔여를 즐긴다면 오욕은 없을 것이다.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지난 세월의 삶도 소중했지만 오늘 이후 삶이 더욱 소중하다. 놀부처럼 독식하지 말고, 베풀고 보듬고 같이 가는 동행의 삶이 아름답다.@

 

 

▷김상홍 박사(전 단국대 부총장, 명예교수, 문학박사). 단국대 법학과, 고려대 대학원 한문학 문학박사. 단국대학교 부총장, 대학원장, 사범대학장, 교무처장 등 역임. 한국한문학회장, 한국한문교육학회장, 민주평통자문회의 자문위원(제10~11기), 교육부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위원 등 역임.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Best 강사상 수상 및 명예의 전당에 헌액(2017), 다산학술상 학술대상, 일석학술상, 모범 스승상과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 <아버지 다산>, <다산학의 신조명>., <다산의 꿈 목민심서>, <다산 문학의 재조명> 등 40여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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