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메시지] 고난의 시간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호세아 6:1)

편집인 정영호 | 기사입력 2020/12/23 [17:10]

[성탄 메시지] 고난의 시간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호세아 6:1)

편집인 정영호 | 입력 : 2020/12/23 [17:10]

 

 

고난의 시간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탐구하도록 인도해

 

고난의 시간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고난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더 깊이 있게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을 하도록 인도한다.

 

2020년이 시작될 때 우리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새로운 희망의 도전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런 꿈의 날개는 낯선 코로나바이러스로 접어야만 했다. 수개월 내에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코로나19는 빠른 속도로 팬데믹으로 변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재앙은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무차별적으로 국경을 넘어, 사회를 넘어, 그리고 이웃과 가족을 넘어 확산되었고 우리 모두를 고통 가운데로 몰아 넣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우리는 이전 문명사회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고난과 싸우며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이전 세계의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것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 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재앙으로 인한 인간의 죽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에 대한 존중 보다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켜 보는 것에 익숙해졌고, 하나님 보다 자신의 존재감과 능력 그리고 독단적 의사결정의 자유함을 따라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조차 상대화하는 습관이 우리의 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 재앙의 고통이 나와는 상관 없는 것으로 보기엔 너무 위험하고 불안한 시대에 우리가 서 있다. 이전에 건강하게 여겼던 호흡이 이제는 내가 원치 않는 사이에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불안감에 우리는 어김없이 마스크를 써야만 한다. 누군가의 고통 혹은 고난이 나의 것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명사회의 재앙 가운데서 우리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스크는 단지 최소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 방편에 불과할 뿐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완전한 안전장치가 없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겪는 고난으로부터 우리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우리의 영적 평안과 생명조차도 완전하게 보장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

 

위기와 재앙의 시대에서 우리가 고난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이 문제에 직면하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난과 고통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그것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통로이다.

 

고난의 문제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은 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비참한 재앙 앞에서 우리를 고통당하게 하시며, 그런 괴로움이 우리 가운데 존재하도록 침묵하시는 것인가 하는 회의적 의문이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욥은 그런 회의적 실존 앞에서 오랜 침묵의 시간을 가졌고 친구들과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대화의 시간을 통해 마침내 인간은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자신의 믿음의 눈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욥과 동일한 경험을 한 많은 사람이 역사 속에 존재했음을 알고 있다.

 

고난의 시간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움직이게 한다. 이 시간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 나 혼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부터 혹은 그런 믿음으로부터 우리를 깨어나게 만든다. 이런 깨어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깊고도 진지한 고민과 탐구를 하도록 인도한다.

 

이 주제를 깊이 탐구한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에서 고통의 유익은, 고난 받는 당사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되며 그의 고난을 목격한 사람들은 동정심을 품고 자비로운 행동을 한다라고 했다.

 

고통과 고난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는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의 시간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새롭게 세우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1)

 

바트 어만(Bart D. Ehrman)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석좌교수로 30여권의 저서를 출판한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성서비평학자이다. 그는 세상에서 목격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나는 더 이상 신앙의 주장과 삶의 사실을 조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고통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사람들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가 고통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는 아이러니칼하게도 기독교의 복음이 가장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는 곳이다. 이미 번영한 나라들에게서 복음의 빛이 점점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해보면 역설적이 아닐 수 없다.

 

고통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재앙의 위기 가운데 있다. 고통과 고난의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는 이 땅 위에 생명의 빛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 오신다. 그가 오심으로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충만할 것이다.

 

우리는 고난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고난의 시간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다는 교만으로부터 우리를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움직이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깊고도 진지한 탐구를 하도록 인도한다. 지금은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갈 때이다. 그가 우리를 치료하신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