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상홍 교수의 인생론③ 다산의 공렴(公廉) 사상

김상홍 | 기사입력 2021/01/07 [16:34]

[특별기고]김상홍 교수의 인생론③ 다산의 공렴(公廉) 사상

김상홍 | 입력 : 2021/01/07 [16:34]

 

▲ 다산 정약용과 목민심서(사진_매일경제)     ©편집인

 

 

서양사회를 지탱해온 것이 기사도정신이라면, 동양사회를 유지해온 것은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의 핵심은 공렴(公廉)이다. 공렴은 성품과 행실이 공정하고 청렴(Integrity)하며 강직함을 뜻한다. 아무리 청렴해도 업무에서 편 가르기와 이중잣대와 내로남불을 한다면 부패(Corruption)보다 그 피해가 더 크다. 그래서 공렴해야 한다. 공렴이 시대정신(Zeitgeist)이다.

 

다산은 지금부터 232년 전인 1789(정조 13) 310일 전시(殿試)에서 갑과 2위로 합격했다. 당시 28세였다. 이해 정월 27일 문과에 급제하여 희정당에서 정조대왕을 뵙고 물러나와 지은 시의 일련을 보자.

 

무능해서 임무수행 어렵겠지만(鈍拙難充使)

공렴으로 정성다해 충성하리라(公廉願效誠)

 

28세의 다산은 공렴한 공직자가 되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그는 11년간 벼슬하는 동안 이 약속, 공렴을 철저하게 지켰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本務)이자 모든 선()의 원천이요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연의 임무로 모든 선과 덕의 원천이자 뿌리라고 했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다산은 옛날부터 무릇 지혜가 깊은 선비는 청렴으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으로써 경계를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직 선비가 청렴해야하는 것은 처녀의 순결과 같다고 했다.

 

다산은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서 지혜가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 욕심이 크므로 청렴한 관리가 되고, 지혜가 짧고 사려가 얕은 사람은 그 욕심이 작으므로 탐관오리가 되는 것이니, 진실로 생각이 여기에 미친다면 청렴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청렴이 이익이 가장 많이 남는 장사라고 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공직생활의 3자의 비결은 (), (), ()이라고 했고, 상산록(象山錄)을 인용하여 청백리를 3등급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 최상의 청백리는 봉급 이외에는 일체 먹지 않고, 먹고 남은 것도 집으로 가지고 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둘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한 필의 말을 타고 집으로 시원스럽게 가는 것이니, 이것이 옛날에 말하는 청렴한 관리(廉吏)이다.

둘째, 다음 청백리는 봉급이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이 중고(中古)의 청렴한 관리이다.

셋째, 최하의 청백리는 이미 규례(規例)가 있는 것은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지만, 규례가 없는 것은 죄를 먼저 짓지 않고, 향임(鄕任)의 자리를 팔지 않으며, 천재를 입은 전답에 세금을 감하는 재감(災減)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번롱하지 않고 송사(訟事)와 옥사(獄事)를 팔아먹지 않으며 조세를 더 부과하여 나머지를 착복 않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염리(廉吏)이다.

 

다산은 이어서 모든 악을 갖춘 자가 지금 도도한 대세를 이루고 있다. 능히 최상을 하는 것이 진실로 좋지만 능히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오히려 그 다음 것을 해도 좋다. 소위 최하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옛날에 있어서는 반드시 삶아 죽이는 팽형(烹刑)을 당했을 것이다. 무릇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부하를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신뢰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신뢰는 성실에서 나오는 것이니, 성실하고도 능히 청렴해야 뭇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위엄은 청렴에서 신뢰는 성실에서 나오는 만큼, 성실하고 청렴해야 아랫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고 했다.

 

▲ 김상홍 편서 <다산의 꿈 목민심서>     ©편집인

 

 

다산은 목민관이 아무리 학문이 높고 청렴해도 무능하고 부하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피해가 백성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그 예를 목민심서에서 다음과 같이 들었다.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1485~1541)사재척언(思齋摭言)에서 말했다. “이세정(李世靖)이 경학에 정통하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한때의 재상이 많이 공의 문하에서 나왔고 우리 형제도 역시 문인이다. 돌아보건대 재간(행정 능력)이 없었다. 공이 나아가 청양현을 다스릴 때에,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이 새로 관찰사로 제수되니, 한때의 문인들이 모두 청양 현감을 부탁해서 말하기를 우리 선생은 학문이 높고 지조가 맑으니, 삼가 망녕되이 폄하하지 말라.’고 하였다. 최숙생이 선선히 응낙하고 가서는 맨 처음의 고과에서 이세정을 파출시켰다. 최숙생이 돌아오자 여러 재상들이 가서 보고 호서 일도에 어찌 교활한 수령이 없어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독촉하는 행정이 부진하다하여 우리 선생(이세정)을 하고(下考)에 두었단 말인가.’했다. 최숙생이 말하기를 다른 고을의 수령은 비록 교활하다고 하나 다만 한 사람의 도적일 뿐이니 백성들이 오히려 견딜 수 있지만, 청양현감은 비록 청렴하나 여섯 도적이 아래에 있으니 백성들이 견딜 수 없는 바라.’고 하였다.(여섯 도적은 육방(六房)의 아전을 이른다.)” 이로써 살피건대 비록 학문이 크고 넓다 하더라도 아전을 단속할 줄 모르는 자는 백성의 수령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관찰사(현 도지사) 최숙생이 다른 고을의 수령은 비록 교활하다고 하나 다만 한 사람의 도적일 뿐이니 백성들이 오히려 견딜 수 있지만, 청양현감은 비록 청렴하나 여섯 도적이 아래에 있으니 백성들이 견딜 수 없는 바라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시절 청양현감 이세정은 학문이 높고 청렴했으나 이호예병형공(吏戶禮兵刑工)의 아전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도적인데도 제압하지 못해 파출을 당했다.

 

그는 행정에 무능했고 부하를 다스리는 리더십도 없었다. 다산은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부하를 단속 못하는 자는 목민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학문과 청렴이 능사가 아니다. 공렴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리더가 다산의 공렴사상을 실천하면 망국적이고 반민주적인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와 징글징글한 이중잣대와 능글능글한 내로남불이 사라진다. 한 자리에서 공정을 37번이나 말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공렴이 시대정신(Zeitgeist)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