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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대통령 리더십의 조건(6)

포용의 정치로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② [존 F. 케네디]

편집인 정영호 | 기사입력 2021/01/28 [10:18]

위기의 시대, 대통령 리더십의 조건(6)

포용의 정치로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② [존 F. 케네디]

편집인 정영호 | 입력 : 2021/01/28 [10:18]

▲ 존 F. 케네디 대통령(사진_robbreport.com)     ©편집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내려놓으면

반대 목소리의 진실을 들을 수 있어

 

통합의 리더십은 리더의 자기희생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과 자기 진영의 편에서 통합을 이루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이나 정치적 이익을 내려놓아야 반대편의 목소리의 진실을 알고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을 발휘할 수 있다.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직면했던 위기 상황은 쿠바 미사일 사건뿐만 아니라 흑백인종 갈등으로 인한 폭동과 유혈사태로 미국 내전 위기의 상황에도 직면했었다. 그는 링컨 대통령이 이룬 노예해방과 미국 연합이라는 위대한 통합이 흑백 갈등으로 내전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통령 재선을 포기하는 자기희생의 결단을 보여주었다.

 

민권법 제정은 케네디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그는 통합을 위해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는 암살로 프론티어십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통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흑인 민권법 제정, 대선 공약 이행 갈등에 직면한 케네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밤새 잠을 못 이루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에서 그리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초조한 채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 의자에 몸을 깊숙이 내린 채 한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주변엔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과 참모들이 대통령의 불안한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대통령의 중대 결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남부에서 더욱 격렬해지는 흑백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케네디는 대통령 선거에서 아주 근사한 표 차로 승리했다. 그가 대선에서 승리한 배경에는 남부 흑인 유권자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다. 사실 케네디는 남부 백인들의 지지만으로는 당선이 불투명했다.

 

그는 흑인들의 표를 의식해서 흑인 민권법 제정에 대한 공약을 발표하고 흑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케네디가 흑인의 인권향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일단은 당선되어야 한다는 전략적 측면에서 그런 공약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이 악화하였다. 케네디는 민권법에 어떤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3년 케네디의 재선을 위협하는 사태가 남부지역 앨라배마 버밍톤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에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사태는 폭력과 유혈을 가져왔고 버밍톤에서는 건물이 불타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런 사태를 미리 예견했을까?

 

1963년 새해가 다가오기 전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인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백악관을 방문해 케네디에게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00주년이 되는 새해 전야에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새해에 팜 비치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냈다.

 

케네디는 TV 뉴스를 통해 폭력과 유혈 그리고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남부 백인들의 지지 기반을 무시하고 자신의 공약을 실현해야 할지 아니면 남부지역의 혼란을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진압해야 할지 .....

 

흑인 민권 개선을 위한 케네디의 위대한 결단

케네디는 도덕적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해

 

케네디 대통령은 깊은 고민 끝에 자신의 진영 요구를 무시하고 결국 흑인 민권 개선을 향한 조처를 내리기로 결단했다. 그는 남부 백인 지지자들에게 유혈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민권법안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시민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TV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민권 연설은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용기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도덕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

만약 미국인이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식당에 마음대로 못 가고,

투표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을 최고의 공립학교에 보내지 못한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피부색이 변해서 그의 위치에 설 것인가?

 

링컨 대통령이 노예들을 해방한 지 10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들의 후예들, 그들의 손자들은 매우 자유롭지 못하다.

 

좌절과 불안의 화염이 복부와 남부의 모든 시를 불태우고 있다.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임무는 그 혁명을, 그 변화를, 평화롭고 건설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달라스에서 암살 당하기 전 오픈 카 위의 케네디 대통령과 부인 재클린(사진_Theconversation.com)     ©편집인

 

 

케네디는 도덕적 관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는 내전의 위기 앞에서 위대한 그리고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유혈과 폭력 그리고 건물이 물타는 사태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케네디는 의회를 중심으로 민권법 제정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법안이 하원으로 넘어오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에 케네디는 재선을 위해 텍사스 달라스를 방문했다. 불행하게도 19631122일 그는 그곳에서 암살을 당했다.

 

남부 출신 린든 존손 부통령이 케네디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사망한 대통령에게 가장 좋은 기념물로 그의 민권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의회를 설득했다. 민권법안은 그의 고결한 뜻과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기념선물이었다. 케네디는 흑백통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진영이 아니라 국민의 관점에서 현 시국을 직시해야 한다. 위대한 리더는 국민의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추구한다. 둘로 쪼개진 국민분열, 이대로는 안 된다. 지도자의 희생만이 정상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통합을 추구하는 지도자의 길은 그만큼 멀고 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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